인조,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다(三排九叩頭)
굴욕의 역사 병자호란
이 책 《병자호란 47일의 굴욕》은 1636년(인조14년) 청나라가 조선을 침략한 병자호란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책이다. 병자호란은 우리 역사에 있어 가장 치욕스런 사건 중의 하나다. 역사 이래 우리나라는 많은 외적의 침입을 당하고 근세에 이르러서는 일본에 의해 국권 침탈 등의 수난을 당하긴 했지만, 우리나라의 왕이 외국의 왕에게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술잔을 올린 적은 일찍이 없었다. 조선조의 인조가 유일하다. 물론 백제의 의자왕과 고구려의 영류왕이 당나라에 압송되었다는 설은 있지만, 그래도 머리를 조아린 기록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자호란과 관련된 국내의 출판물을 찾기란 쉽지 않다. 물론 병자호란과 관련된 많은 논문집들이 있지만 일반 대중을 위한 도서는 많지 않다. 이는 대중의 정서에 내재되어 있는 치욕의 역사에 대한 거부반응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따라서 일반인이 기억하고 있는 병자호란에 대한 지식은 협소할 수밖에 없다. 단지 남한산성으로의 피난과 삼전도의 치욕, 최명길과 김상헌, 그리고 삼학사에 대한 어렴풋한 지식이 거의 전부일 지도 모른다. 역사는 늘 무수한 이야깃거리를 파생해낸다. 그렇게 파생되어 흘러넘치는 이야기들이 진실처럼 떠돌기도 한다.
이 책은 그러한 점에 있어서 철저히 객관적이다. 또한 저자는 추론을 삼가고 사실 전달에 주력하고 있다. 온전히 자료에 의존함으로써 독자들이 진실에 접근할 수 있는 통로를 제공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의 집필 근거를 나만갑의 《병자록》, 정약용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과 《조선왕조실록》에서 찾고 있다. 특히 《병자록》의 저자 나만갑은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에서 인조를 옆에서 보좌하며 식량과 물품을 관리하던 양향사라는 직책에 있었기 때문에 당시의 상황을 직접 접하고 가감 없이 기록했을 것이다. 즉 저자가 말하는 《병자록》의 진실성에 대한 근거이다. 또한 저자는 조선조의 정사인 《조선왕조실록》을 철저히 들추어 병자호란 당시의 상황을 정리함으로써 신뢰를 더해준다.
이 책 《병자호란 47일의 굴욕》은 모두 4부로 구성되어 있다. 병자호란이 일어나게 된 배경과 원인, 남한산성 안에서의 47일 동안 일어났던 생생한 이야기들, 산성 밖의 전투, 전란 후에 병자호란으로 야기된 이야기들을 흥미 있게 구성함으로써 독자들에게 건조한 역사서가 아닌 대중의 읽을거리를 제공한다. 또한 부록으로 주요 등장인물들에 대한 약력 및 해설을 곁들였다.
이 책은 당시와 오늘의 시대상황을 견주어 음미해볼만 한 대목이 많다. 강대국에 끼어 혼란을 겪고 있는 우리나라의 상황이나, 국난에 처해 있으면서도 정치인들이 벌이는 탁상공론들이 오늘날과 하등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독자들은 당시 상황에 비추어 누구의 결정이 옳았는지 나름 주관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역사는 늘 현재의 잣대만으로는 재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